누군가가 이 글을 보았단다.
마치 지하철을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들었단다.
나도 다시 찾아 읽어 본다.
괜찮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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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에 보관된 오래된 파일들을 정리하다 해묵은 글 하나를 찾았다.
2001년도 연말 쯤인가 보다.
지인으로 부터 원고 청탁을 받고 써 보낸 글인데 지금 보니 새롭다.
서울생활이 한참이나 낯설 때의 얘기다.
<나는 매일 지하철을 탄다 >
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한다. 안양에 산지 일곱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버스 탈 줄을 모른다. 어디서 몇 번을 타야 정부중앙청사가 있는 광화문까지 오는지를 아직 모르고, 출근길 막히는 걸 생각하면 아예 엄두가 나질 않는다. 자동차도 마찬가지다. 아내가 출근하지 않는 날 몇 번 직접 차를 몰고 나왔었는데 지각만 했다. 이래저래 지하철만 한 게 없다. 월요일이나 금요일 아침에는 다른 날 보다 좀 더 일찍 나서야 하고, 여름에 찜통같은 더위를 좀 참아야 하긴 하지만 말이다.
지하철은 아직도 낯설기 만한 거대한 도시인 서울을 알게 해준다. 사무실 칸막이 한켠에는 커다란 ‘수도권 전철구간 노선도’가 붙어 있다. 서울 시내로 출장을 가야할 일이 생기거나 사람을 만날 약속이 생기면 그 장소와 제일 가까운 지하철역부터 알아본다. 몇 호선을 타고 가야하는지, 어느 역에서 내려야 하는지 부터 챙긴다. 서울이 아무리 넓고 복잡한 도시라 하더라도 지하철을 타면 걱정이 없다. 지하철은 내가 가고자 하는 곳에 약속 시간에 맞춰 나를 데려다 준다. 비가 오는 날에도, 눈이 오는 날에도, 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에도 끄떡없다. 수많은 차들과 사람들과 빌딩 숲 아래로 막힘 없이 언제든 내달린다. 지하철이 있음으로 서울은 낯설지 않게 나에게 다가온다.
지하철에는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출근길, 채 마르지 않은 머릿결에서 풍겨 나오는 샴푸 냄새는 싱그러운 아침이 시작되었음을 알려준다. 로션 냄새와 뒤섞인 담배 냄새는 그가 어제 저녁 늦게까지 있은 술자리의 왁자지껄한 소리를 전해준다.
쉼 없이 재잘대는 아이들에게는 맑고 힘찬 내일의 풋풋한 냄새가 나고, 백발에 주름진 얼굴의 노인들에게서는 인생의 역경을 이겨낸 굳셈이 풍겨온다. 불그레한 얼굴로 흐느적거리는 술 취한 사람들에게서는 힘든 하루가 있었음을, 눈을 감고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졸고 있는 사람들에게서는 고단한 하루를 쉬어 가고픈 간절함이 묻어난다.
얼굴을 맞대고 부둥켜안은 채 서 있는 연인들에게서는 설익은 사랑 냄새가 나고, 연신 핸드폰을 눌러대는 젊은이에게서는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이 슬며시 피어난다. 가끔은 이런저런 냄새들이 뒤섞여 구분하지 못할 때도 있지만 지하철에는 분명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지하철은 나에게 생각할 시간을 준다. 오늘 할 일을 계획하고, 오늘 한 일을 되새기며 또 다른 오늘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어릴 적 추억들을 생각하며 그 시절의 친구들을 그리워 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지금 내가 서있는 자리가 어디이며 어떤 길을 따라 이 곳에 왔는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지하철이 거침없이 달리는 것처럼 생각의 기차도 끝없이 내달린다.
낯선 서울을 낯설지 않게 하고,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사람 사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여유를 주는 지하철을 나는 사랑한다. 덜컹거리며 달려가는 지하철에 가만히 몸을 맡기기만 하면 움츠렸던 가슴은 절로 펴지고 마음은 추억의 철길을 따라 여행을 시작한다.
새해에는 지하철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좀 밝아졌으면 좋겠다. 무뚝뚝한 표정이 좀 풀리고 눈가에는 옅은 미소가 생겼으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친절한 말 한마디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겨울이 지나고 새 봄이 오면 지하철을 타는 사람들의 마음도 따뜻해 졌으면 하는 작은 소망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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