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살면 무슨 재민겨?

생각이 많아 지는 봄 날

파라오배 2006. 4. 17. 04:14

선배님께

잘 지내시죠? 오랜만입니다.

 

카이로 날씨가 변화무쌍하네요.

그제는 한국의 한 여름처럼 뜨겁기만 하더니 어제는 늦가을, 오늘 아침엔 초겨울의 날씨를 보여줍니다. 예년 같지 않게 4월에 빗방울도 뿌립니다.

4월의 카이로 날씨처럼 제 마음도 그렇습니다.

요 몇일 제 마음이 무겁기만 합니다.

 

엊그제 새학년도 학부모총회가 있었습니다.

전교생 40명에 총 29가구인데 모두 열 분이 참석을 했더군요.

1주일 쯤 전에 자모회장에게 연락을 해 두었기 때문에(다른 회의가 아니라 총회라 자모회장을 새로 뽑는 자리라 사전 연락이 다 되었으리라 생각을 해서) 안내장을 하루 전날에야 보낸 게 못내 마음에 걸렸습니다.

지난 입학식 때도 오신 분들이 예전 만치 많지가 않아 학교에 대한 관심이 덜해 졌나 싶어 마음이 불편했었는데 그 날도 시작부터 좀 그랬었습니다.

 

지난 1년 동안의 학교 운영에 대해 설명도 드리고, 잘한 일은 자랑도 좀 하고 그랬습니다.

제 얘기를 마치고 나서 질문이나 건의사항 있으면 말씀 하시라 했더니, 미리 준비한 A4 한 장을 주시더군요.

잠시 놀랐습니다. 사전에 전혀 알지 못했거든요.

잠시 얘기를 듣다가 시간도 많이 지나고 해서 제가 하나하나 설명을 드렸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부분도 있었고, 학교에서 좀 더 신경써야 할 부분도 있더군요.

건의사항을 준비해 왔다는 건 학교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봐야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좀, 많이 서운하더군요. 답답하기도 하구요.

사전에 가지고 와서 이런저런 건의사항이 있으니 학교 운영에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선배님 아시듯이 제가 막힌 사람도 아니고...

큰 잘못을 저지르고 학부형들 앞에서 추궁 당하는 기분이더군요.

제가 흥분을 잘 하는 성격이잖습니까. 그래서 열도 좀 받았습니다.

그런 거 숨길 줄도 몰라 얼굴이 아마 울그락 불그락 했을 겁니다.

아직 수양이 덜 된 걸 어떡하겠습니까.

 

오늘 전 학부모들에게 메일을 보냈습니다.

건의사항에 대해 일일이 간단히 답을 달았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설명을 했고, 또 학교가 더 해야 할 것들에 대해서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도 안내를 해 드렸습니다.

선배!

그래도 마음이 풀리지가 않네요.

아마 제가 속이 좁아 그런가 봅니다.

 

사실 저 여기 와서 참 열심히 일 했거든요.

제 나름대로 옳다고 생각되는 일에, 해야 한다고 생각되는 일을 열심히 추진했습니다.

처음엔 욕도 더러 먹었습니다.

너무 젊은 사람이 와서 현지 실정도 모르고 의욕만 넘친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도 옳은 일은 나중에 다 알게되잖아요.

내 개인 욕심없이 아이들을 생각하며 일했습니다.

운영비 한 푼이라도 아낄려고 애도 많이 썼습니다.

(제 돈 그렇게 아꼈으면 아내에게 이쁨이라도 받았을텐데...)

그런 거 알아 달라는 건 아니지만 2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나"를 모르나 싶어 속이 상하네요.

 

그래서 기운이 없습니다.

시간이 지나야 하겠지요.

 

조용한 밤에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자꾸

 

후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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